[석사일기] 17일차: 막내의 미학

 

 

요새 점점 일하기싫어 노래를 부르다가, 드디어 오늘 그 정점이 달했다.

 

 

어제 몸살이 난 데다가 교수님의 기대까지 산산조각을 내서, 선학습 모델을 처음부터 만들어야하는 처지에 놓이자, 그 마음이 더욱 더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못난 제자라.....죄송합니다...교수님.......... 저는......바보라........그래요.........

 

 

 

 

그래도 막내라서 아직은 교수님이 용서를 하시는 것 같다.

 

 

 

나는 휴학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다이렉트로 대학원을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 랩실의 막내이다.

 

하지만 풋풋하진 않다. 많이 삭음

 

 

 

이 랩실의 막내로서 생활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 막내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어느정도 활용을 위한 스킬이 쌓였다.

근데 이거 말하다 들키면 ㅈ댈거 같은데

 

 

 

 

막내로서의 장점은 관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이 예시로써 활용될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어떤 일을 해도, 다른 분들보다 교수님과 다른 선배들이 더 참아주신다.

 

예를 들어 어제같이 교수님의 기대를 박살내버린다던지, PPT를 개같이 못 만든다던지 하는 그런 손이 한 번 더 가는 상황에서 한 번 더 관용을 베풀어 주신다.

 

 

2. 모른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다.

 

하이퍼 파라미터 조정을 어떻게 해야하냐 같은 기초적인 질문에 복장이 터져도 한 번 더 참아주신다. 

 

 

3. 여러가지 일이 있을 때 가장 쉬운 일을 배정받을 수 있다.

 

1, 2번에서 얘는 아직 모자라고 덜 됐다는 인상을 받아서, 어려운 일보다는 그나마 쉬운 일을 주신다. 

그마저도 헤맨다는 게 함정 

 

 

 

 

그리고 막내로서의 단점은 다음과 같다.

 

 

 

1. 예스맨이 되어야 한다. 싫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긴 짬이 부족하다.

 

약간 억울한 피눈물나는 상황이긴 한데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꾸역꾸역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기도 하고, 하다보면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2. 눈치의 가자미맨이 되어야 한다. 양옆을 가자미눈으로 쉴새없이 훑으면서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

 

살짝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하면 알아서 저글링을 하든 앞구르기를 하든 분위기를 좀 띄워준다.

 

다들 나보다 바쁘니 청소같은 쫌 사소한 일이면 그냥 내가 슬쩍 하는 것도 좋다. 불화의 씨를 잘라버리는 거다. 

 

발표 이런 것도 해야하면 걍 먼저 하는 게 낫다.

 

어차피 내가 제일 허접하기 때문에 빨리 하고 뒤에 좋은 거 나와야 비교 덜 당하니까...ㅎ

 

 

3. 잡일맨이 되어야 한다. 1번과 비슷한 맥락인데,

 

프로젝트가 위에서부터 실패한 게 있으면 내가 맨 마지막 잡일꾼 모드가 되어 폭탄처리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위에서 어떻게하면 실패하는지에 대해 기록이 되어있으면 일이 좀 더 수월해지긴 한다.

 

혹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발만 걸치게 되어 프로 문어발 프로젝트맨이 될 수도 있다. 

 

 

 

 

 

 

 

엄 쓰다보니 막내의 단점이 더 구체적이다......

 

 

그런데 절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더 일반적으로 먹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장 아니고 리얼 참 트루임

 

 

 

 

막내로서 동기 없이 랩실 생활을 하는 건 분명 외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얌체 동기 만나서 스트레스 쌓이느니 동기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정말 다행인 거는 우리 랩실에는 엄청난 꼰대는 없다는 것..! 나같은 소심인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다.

 

 

 

 

아 다만 막내 버프는 기간 한정 아이템인데 약 1학기~1.5학기 정도 받을 수 있다. 

 

 

 

교수님과 선배님들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자.

 

 

 

얼른 실력도 많이 늘려서 관용을 바라지 않을 수준이 되고 싶다...!